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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소설

논평) '현남 오빠에게': 아 할말은 해야겠다.

요즘처럼 양성평등이 강하게 주장되고 페미니즘이니 성추행 고백이니해서 남성과 여성의 대립이 극적으로 갈리는 시기도 없는거 같습니다. 언제나 함께였고 항상 남자와 여자가 있었는데, 그동안의 억압이 많은 서러움을 낳았고 분출되는 시기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능한 부분입니다. 분명히 남녀는 다르고 흑백황 인종도 다릅니다. 생김새도 다르고 생각도 정말 모든 부분이 다 다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 같은 인간이기에 '다름을 인정하고 평등하다 생각해야 하는것이 옳다' 생각하는 사람이 작성한 글입니다. 저도 인간이기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순간이 있을수 있음을 고백하며, 그럼에도 최대한 평등하게 생각하며 신중히 글을 작성해보았습니다.


양성 평등, 페미니즘으로 익숙한 요즈음 대한민국은 더이상 약자가 아닌 평등의 목소리로 떠들석 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과도한 물타기 속에 분출을 정당화하여 지켜야할 선을 넘어가면서까지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없기를, 이 혼란의 시기 끝에 남는 것이 상해버린 감정이 아니라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된 남녀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한 사람입니다. 이 싸움 끝에 남자와 여자가 각자 틀어져서 금성과 화성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싶을거 같거든요. 인종 평등과 성 평등은 절대 같지 않은 대상들을 사회적 개념으로 묶어 평등화 시키는 과정이기때문에 거쳐나가야할 과도기가 항상 있을것이며, 이루어져도 이루어질수 없는 인류의 숙제로 계속 남아있을것입니다. 반드시 필요한 과정인것임에는 동의를 하지만 세상엔 굶주림과 빈곤처럼 대표적인것 외에도 아직 싸워나가야할것들도 많습니다. 같이 손잡고 위 아래 없이 동등한 위치에서 같이 헤쳐나가자는 취지의 페미니즘만을 옹호하며, 그저 남녀의 싸움만을 조장하고 자신의 잘못또한 성차별로 인한 결과로 몰아가는등 취지 외의 모든 마찰들은 그렇게까지 싸워야할 가치는 없다 생각하는 작성자의 견해를 미리 밝히며 리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리뷰는 이야기 스포일러가 전혀 없습니다.


목차구성은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조남주 작가님 외에는 다들 처음 보는 이름이지만, 저마다의 경력과 실력으로 이 글에 수록된 작가님들입니다.

(아래의 내용을 위해 미리 보험 설치좀 할게요.)


조남주 「현남 오빠에게」 
최은영 「당신의 평화」 
김이설 「경년(更年)」 
최정화 「모든 것을 제자리에」 
손보미 「이방인」 
구병모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 
김성중 「화성의 아이」 
발문_이민경 「여성의 이야기에 오래 머무른다는 것은」


이 책은 각 단편이 각 작가의 이야기로 수록 되어 있습니다.

책 겉표지에도 적혀있지만,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으로 꽤나 유명세를 타고있는 조남주 작가의 글도 실려있습니다. 페미니즘 서적은 특히 그중에서도 소설로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이 부류의 책들은 작가의 중립성이 무너지는 순간 끝입니다. 위에서 서술했던 페미니즘의 결론이 양성간의 평등과 화합을 이루는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필자로써는, 여성의 지지만 얻는 결론이나 남성의 혐오를 끌어내는 이야기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대표적으로 이갈리아의 딸들은 모든 남성과 여성의 가치관과 언어의 태생조차 뿌리 채 뒤집어 버려서 중립성을 잘 지켜낸 소설이라 할수 있었습니다. (좋은 소설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82년생 김지영에 관해서도 정말 있는 사실 그대로, 실제로 82년생들이 공감을 이루어 낼수밖에 없는 사실만을 그대로 적어낸 수필같은 소설로써 성별이 다른 저에게도 많은 공감을 받아냈고 생각해보지 않았던 다른 성별의 고충들을 보지 못하는 시각에서 바라보게 해줌으로써 페미니즘 평등화의 요점을 잘 이끌어낸 책이었다고 봅니다. 

왜 이렇게 책 얘기는 없고 서론만 기냐구요?

이 책의 할 얘기가 별로 없어서 입니다.


안타깝게도, 단편중 절반 이상은 제 기준에서 불필요한 소설이었습니다.

페미니즘을 억지로 맞추어내기 위해 쓰여진 소설. 노력하신 작가님들에게는 죄송하지만 발문에서 이야기하는 요지가 양성평등이 이루어지지 못한 사회적인 풍토 속에서 약자로 몰려있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이끌어내며 주인공이 되기 힘든 어려운 환경과 현실을 호소력있게 말하는 작품들로 독자들에게 메세지를 마음 깊게 전달한다는 요지인데, 절반은 그 요지에 맞지 않습니다. 주인공이 여성이고 무언가를 달성해나가는 소설의 기본 플롯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배경 사건 갈등등이 전부 안정화 되지 못하는 기초적인 문제가 발생하였고, 읽는 독자로 하여금 충분한 지지를 얻어내지 못할 이야기가 마음아팠습니다.


분명 보면 좋을 단편도 있지만, 정말 괜찮은 단편도 있었지만,

아무리 잘 달리는 차도 고장이 잦다면, 느리더라도 튼튼한 차를 타게 되듯이,

이 책의 평점또한 후자가 아닌 전자의 차량처럼 고장이 잦아 먼지가 쌓일 운명에 놓인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들, 세상의 불평등을 뚫고 작품 스스로의 이야기와 질로 승부하는 좋은 소설들은 도처에 많이 있습니다. 최근 작품은 영화 마션으로 유명한 엔디 위어의 '아르테미스'가 있고, 위에서 언급한 82년생 김지영등 분명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책 '현남 오빠에게'에 붙어있는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거창한 부제가 조금은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마치 요즘 유행하는 트렌드에 맞춰서 글을 써내려간것으로 누군가를 호소력있게 설득하기란 독자를 우습게 보는 행동으로 보여질만큼요. 작위적으로 생성된 성차별을 어거지로 몰아붙이는 이야기는 정말 여러가지 문제를 만듭니다. 작가도 글쓸때 반드시 조심해야합니다. 자신의 글로 잘못된 사상이 주입되어 또 다른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 펜으로도 사람이 죽는다는걸 잊지 않았으면 하네요. 그래서 괜찮은 단편만 볼드체로 목차에 표기해두었습니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페미니즘에 대해 이제 알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작가가 혼란을 주지 않는 생각을 심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양성평등,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하나씩 바꾸어가면 됩니다. 

한번에 모든 가치관을 뒤집을 필요는 없습니다. 급하게 바꾸면 몰아치는 파도처럼 넘치고 역차별이 생기며 마찰이 늘어나기만 하니까요. 반드시 언젠가 동등한 위치가 될것이고 이렇던 저렇던 한 가족 한 인류입니다. 빠르게 성장해온 사회의 발전으로 뒤로 미뤄져있던 인권의 보장. 없어져야 하는 안좋은 병폐들이 하나 둘씩 뜯겨져나가는 모습은 드디어 라는 생각도 들고 다행이다라는 생각도 듭니다. 부당한 처사와 대우에도 묵묵히 아무말없이 답답하게 속앓이만 하던 여성은 이제 없습니다. 작은 목소리로 당당하게 자신의 할말을 하며 부당하다 외치고 용기있게 나서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모여 이루어내고있고 만들어져가고있습니다. 이렇게 깨어있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간다면 먼 미래도 아니겠죠.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언젠가 이루어진채로 소설 플롯으로만 남아 '아 저런 시절도 있었구나' 처럼 다가올수 있도록 사회의 구성원 한사람 한사람이 노력해야하는 시기라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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