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달 리디북스가 대체 몇권이나 무료로 푸는건지 책을 몰아서 읽게 만드는 감사함을 느끼며.
2015 대한민국 전자출판대상 ‘대상’ 수상작인 임선경의 첫 소설 '빽넘버'는 초현실주의에 특수한 상황을 한방울 가미하여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낸 이야기입니다. 평상시에 접하기 힘든 환경속-병원에 양로원에 삶의 마지막을 생각해보기 충분할정도로 철저한 자료조사 속에서 출간된 책이라 그런지 앞에 갈 길을 미리 보여주고 그 길을 작가와 독자가 함께 걸어가는 듯한 인상을 주는 책이었습니다. 책 평점에는 안좋은 이야기가 많은데, 취존이지만 제 기준에 별 1개 받을만한 작품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이 리뷰는 책에 대한 스포가 가득합니다.
다 보고나면 애매하게 책을 읽은 느낌이 나서 찾아보게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등에 숫자를 매달고
같은 곳을 향해 가고 있다, 그날을 향해.
그날이 언제인지 알고 있는 ‘보는 자’ 앞에
백넘버가 없는 사람이 나타난다
원래 책 읽을때 간단한 내용만 알고 댓글로 평점만 확인해본다음에, 읽었을때 시간낭비한 느낌은 안들겠구나 싶은 수준이면 일단 읽는 습관이 있어서 이 리뷰를 작성할때가 되서야 저런 부분이 처음부터 소개되었다는걸 뒤늦게 알았네요. 책 보는 내내 '자 그래서 뒤엔 어떻게 될까?' 하면서 봤는데 백넘버가 없는 사람이 나타난다라는 내용을 알았으면 다른 각도로 봤을거같습니다.
아니 지금보니 책 소개 글에서 책 전체의 내용을 다 적어놨었네요? 처음에는 봐도 '아 대충 줄거리가 저렇구나' 하고 보시면 될거같습니다. 책 줄거리는 저게 전부이기 때문에 이야기가 본인 입맛에 맞는 분만 읽으시면 될거같아요. 하지만 줄거리는 전부여도 책에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의 내용은 저게 아니니까 여전히 읽을만 합니다.
책 소개 인트로 부분
대학생 이원영은 어머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상가(喪家)에 다녀오던 중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른다. 다시 고속도로로 나갈 때 안전벨트 매는 것을 깜빡 잊은 덕분에, 곧이어 맞닥뜨린 교통사고에서 부모님을 잃고 혼자 살아남는다. 중상을 입고 병원에서 깨어난 이원영은 자신에게 이상한 능력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람들의 등에 연한 녹색의 숫자가 매달려 있는 것이다. 그 숫자는 오직 원영에게만 보인다. 원영은 곧 그 숫자, ‘백넘버’의 의미를 알게 된다. 스스로의 등을 볼 수는 없으므로, 당연하게도 원영은 자신의 백넘버만은 알 수 없다. 등 뒤의 숫자를 통해 생명의 소멸을 늘 ‘보고 있던’ 원영은 어느 날 우연히 한 카페에서 젊은 남녀의 마지막 순간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등에 백넘버가 없는 남자와 맞닥뜨린다. 곧 원영은 백넘버가 없는 그들의 정체와 부모님을 잃은 사고 직전, 휴게소에서 스쳐 지나갔던 남자에 대해서 알게 되는데…….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중상을 입은 청년 이원영이 다른 이의 등에 쓰인 ‘숫자’를 보는 능력을 갖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대중에게 유명한 작품 영화이자 만화 원작인 '데스노트'에 나오는 사신의 눈과 같은 능력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사신의 눈보다는 마이너 버전이기는 하지만(원영은 등에 수명만 보임), 능력을 이해시키는데에 있어서는 같은 능력으로 설명하는게 더 이해가 빠르겠죠.
교통사고의 과정에서부터 갑작스럽게 평온했던 일상에 끼어든 뒤틀린 일상. 그의 어머니의 운전실력과 휴게소에 있었던 커플들의 이상한 행동, 원영의 사소한 부분등 작가가 책을 쓰면서 이곳저곳 신경쓴게 많았습니다. 책 페이지가 술술 잘 넘어가게 쓴 작가의 표현력은 훌륭했습니다. 간만에 한국 소설을 읽어서 그런지 한국배경도 반가웠네요.
사실은 아까부터 여자의 등을 보는 것을 피해왔다. 뒷모습이 보인다 싶으면 시선을 돌렸다. 그건 이미 습관이거나 버릇이다. 길을 걸을 때는 앞사람의 등을 보게 될까 봐 고개를 숙이고 발밑을 보며 걷는다. 얘기하던 상대가 내 앞에서 돌아설 때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눈길을 돌린다. 그렇지만 이렇게 여자의 등 뒤에 서서 머리를 드라이해주는 상황에서는 등을 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괜찮다. 보이면 보는 거다.
숫자가 보였다. 연한 녹색으로 약하게 발광하는 숫자. 18259라는 다섯 자리 숫자였다. 숫자에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머리는 벌써 제멋대로 계산에 들어간다. 계산을 해볼 것도 없다. 다섯 자리 숫자면 일단 30년 이상이다. 1만8천까지 갔으니 50년?
후천적 능력 발생으로 휴게소에서까지만해도 평범한 인간이었던 그가, 사고 후유증으로 갑자기 '보는 자'가 됩니다. 죽음의 문턱을 넘었다가 돌아온 그에게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보게 되는 능력을 얻은거죠. 언젠가 모두가 죽지만 그 불특정한 날짜로 인해 모두가 저 멀리 죽음을 외면한채 살아가는 우리들과 다르게 그는 죽음이 언제나 눈 앞에 있는 느낌일겁니다.
내가 처음 어떤 사람의 숫자를 본 것은 바로 그 중환자실에서였다.
마른 낙엽처럼 쪼그라든 한 할머니가 중환자실로 실려 들어왔다. 할머니는 초등학생처럼 작았다. 작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옆으로 누워 있어 보자기 한 장이면 다 싸맬 수 있을 정도였다. 할머니의 몸에는 이미 어떤 생기도 남아 있지 않아서 정형외과의 무릎반사 해머로 톡 쳐도 팍삭 깨지고 부스러질 듯이 보였다.
할머니의 등에 6이라는 숫자가 있었다.
5자리가 넘는 숫자를 처음 보더라도 그저 막연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머나먼 이야기니까요. 그러던 와중에 병원이라는 환경을 십분 활용한 저 본문의 내용은 이야기의 서막을 알립니다. 그의 능력이 단순하게 등에 숫자가 보이는게 아닌 그 숫자의 의미를요. 정말 수명의 표시였습니다.
“지금 보믄 봄도 이자 끝이다…….”
“네?”
할머니가 유리창에 이마를 댄 채 아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사 내년 봄을 또 보겠나……?”
음…… 그러려나? 그럴 수가 있으려나? 자연스럽게 포항 할머니의 웅크린 등, 회색 스웨터 위의 숫자로 눈이 갔다. 할머니의 숫자는 백을 겨우 넘겼다. 앞으로 석 달 남짓. 할머니는 내년 봄을 보지 못할 것이다. 쏟아져 내릴 듯한 개나리도 눈처럼 휘날리는 벚꽃도 지금 보는 것이 마지막이다. 팔십 몇 번을 반복한 할머니의 봄 구경은 이제 끝났다. 그런 거였군. 지금 보는 것이 마지막일지도 몰라서, 이 계절을 내년에도 후년에도 또 보리라는 확신이 없어서 노인들은 그렇게 색색으로 차려입고 고속도로를 꽉 채워 꽃구경, 단풍구경을 떠나는구나.
이제 자신의 능력에 적응해 모두의 수명을 보게 된 영일은 자신과 친했던 할머니와의 대화에서 죽음을 눈 앞에 둔 사람의 마지막을 돕습니다. 훈훈하네요. 일반인 아무에게도 그의 능력을 말하지 못하고 혼자만 알고있지만 좋은곳에만 사용하는 영일은 평범한 인간입니다.
노트북 남자가 카페 밖으로 나갔다. 그 남자의 등이 보이는 순간 가슴이 쿵 하고 떨어졌다. 없었다. 백넘버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입은 진한 회색의 재킷 등판은 깨끗했다. 혼란스러웠다. 중환자실 할머니의 등에서 처음 숫자를 봤을 때보다 오히려 더 놀랐다. 뭐지? 저 사람?
나는 남자를 따라 나갔다. 남자는 카페에서 10m쯤 떨어진 건널목 앞에 서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남자 옆에 섰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당신 누구야? 묻고 싶었다. 남자 뒤에 바짝 섰다. 그때 남자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적당히 하지.”
그렇게 하루가 지나면 숫자가 하루 줄어드는 식으로 진행이 되는줄로만 알던 그 시기에, 이 에피소드가 등장하면서 단순히 평화로운 소설은 아니게 되어버렸죠. 5자리가 넘었던 커플이 순식간에 속이 메스꺼워지는 1의 빨간 점등으로 바뀌게 되었고, 어설프고 서투른 그의 방식으로 곧 죽음이 다가올 커플앞에서 노력해보지만 백넘버가 없는 남자에 의해 저지 되고, 그 커플은 예정되로 1이 0으로 바뀌는 모습을 직접 보고 맙니다. 글로만 작성된 책임에도 생생히 전달되는 현장감은 작가의 능력이라고 표현할수밖에없네요. 몰입감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리고, 숫자가 바뀔 수 있음을 알게 된 영일과 독자들은 다음이야기가 어떤게 나올지 예측하며 책장을 넘기게 되죠. 영일에게 다음은 어떤 사건이 나타나게 될까요? 혼자 남은 그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요? 자신의 숫자만 볼 수 없는 그의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게 될까요? 대상 수상작 답게 소설 '빽넘버'안에는 인간의 심리적 갈등 상태에서의 선택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추천할만한 책이네요. 잘 읽고갑니다. 아직 2월이 조금 남았으니 서둘러서 무료로 보시라고 리뷰 남깁니다. 어서 가서 대여하시길.ㅎㅎ
소설 '빽넘버'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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