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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소설

모두가 앞을 보지 못할 때, 빛이 되어주는 한 사람.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1 인트로 편


사람이 살면서 가장 많이 의지하는 감각은 오감중에 무엇일까 생각해보신적 있나요?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으로 이루어진 통상적인 인간의 감각중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얻어 내는 감각은 단연 시각입니다. 눈을 뜨면 보이는 모든 당연한 시각적인 정보들이 통제 될때 사람은 어떻게 되는지 다룬 소설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소설책 눈먼 자들의 도시는 1998년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환상적 리얼리즘 가운데서도 개인과 역사, 현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풍자와 비유, 경계선 없는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작품을 끌어낸 작가입니다. 그가 선택한 이 작품에서의 키워드는 우리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5감각 중에 최상위인 시각인데요, 어느날 갑자기 시각을 잃은 사람들의 혼란 속에서 펼쳐지는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들이 잘 묘사되고 있습니다.


눈이 보이면, 보라. 볼 수 있으면, 관찰하라. - 훈계의 책 에서-


교통 체증 한 가운데서 초록불로 바뀐 신호, 모두 바삐 출발하는 가운데 한 차량이 서있습니다. 흔히 도로에서 발생하는 차 고장-가속 페달이나 레버가 안된다거나, 서스펜션에 문제가 생기거나 브레이크가 말을 안듣거나 전기 회로가 말썽인, 수많은 기계적 결함으로 발생하는 문제들- 이라고 생각하는 평범한 일상 속에 멈춰있던 차의 운전자는 세마디와 함께 문을 엽니다.


"눈이 안 보여"


멀쩡하게 불과 문을 열기 전, 빨간 신호에 맞춰 브레이크를 밟던 순간까지도 멀쩡했을 그의 눈이 안보인다는 그의 말을 선뜻 믿기는 어려운 상황. 육안으로 보았을때 '정상'으로 판단할수 밖에 없는 그의 눈과는 다르게 인상쓰는 얼굴과 치켜올라가는 눈썹이 그가 괴롭다는 사실을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느닷없이 찾아온 재앙에 눈물을 흘려가며 마지막으로 시상에 맺힌 상을 기억해보려 애쓰는 듯한 남자를 위로하는 사람들과 상황을 수습해주는 시민들, 그리고 사고가 난건가 하고 뒤에서 투덜투덜 거리며 체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이 도시는 우리가 아는 어디에나 있을법한 도시입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기위해 초반부에 다소 과할수도 있을만큼 형용구를 넣어가며 시선을 확 끄는 도입부분은 매우 인상적이라고 볼수있습니다. 그게 이런 장르의 문학책의 매력이랄까요. 리얼리즘이기때문에 세계관이 독자들도 아는 상식의 세계이고 그덕분에 몰입하기가 더 쉬웠습니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보는게 어떻겠냐는 여자분의 조언을 뒤로 한채, 일시적인 문제일거라 생각하는 남자는 '누군가 집으로 데려만 주면 된다.' 라고 말하고 어떤 한 시민의 도움으로 무사히 집까지 도착을 합니다. 네, 참으로 감사할 일이지요. 그런 상황에 자진해서 집까지 데려다 주는 사람이 있다니요. 집까지 가는 동안에도 그 남자를 안심시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대단해보이기까지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같던 그는 남자를 집앞까지 데려다주고, 아내가 올때까지 말동무를 해주겠다 했지만, 열의를 보이는 그의 태도에 남자는 의심을 하게 되죠.(나라도 그렇겠다.) 모르는 사람을 눈도 안보이는 이상황에 집에 들일수는 없는거니까요. 그렇게 선한 사마리아인을 보내고, 집에 홀로 앉아서 이것이 꿈이길, 장난이길, 일시적인 것이길 바라고 있습니다. 항상 살던 집. 가구가 어디에 있고, TV며 각종 물건들의 위치를 '눈 감고도' 알거 같은 자신의 집에서도 시각이 없는 상태에서는 무언가를 깨서 피가 날수도 있고 불편하다는 것을 더 부각해서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의 일시적이길 바랬던 시각장애는 결국 일시적이지 않았다.'


병원에서 만난 의사의 소견도 실제 동공도 정상인데 앞을 볼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남자와 독자는 이번 일이 무언가 정상이 아니다 라는것을 깨닫기 시작하게 됩니다. 분명 눈에 할당된 모든 기관에는 아무 문제도 없는데...의사의 분야인 신경외과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었던 남자의 상태는 안과의사에게도 커다란 궁금증으로 다가오게 되고, 동료 의사에게 전화로 물어보고 논문과 서적을 찾아보며 자신만의 결론에 내닫게 되는데 그것은 눈은 정상적으로 기능하지만 그 정보를 뇌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해합니다. 그의 학문의 깊이로는 이해할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그날의 일과를 정리하던중 흐릿해져가는 시야가 피로함의 결과라 느끼며 그렇게 잠을 청합니다. 하지만 그 다음날, 의사의 눈은 전날에 자신이봤던 환자의 상태와 같아지고말죠. 뿌연 안개 속에서 세상을 볼수 없는 유릿빛 창속에 그도 갇히고 맙니다.


이로써 이번 사태가 보통일이 아니라는것을 알리며 점점 스케일이 커지게 되고, 그와 접촉했던 사람들이 나무 뿌리가 퍼져나가듯 점차 범위를 확대하게 되고, 그 상황을 알게된 정부는 이것은 인간이 막을 수 없다는 결론을 짓습니다. 보통 좀비같은 '전염'이 되는 세계관 속의 정부들은 '격리'를 좋아하는데 이 책도 그와 같은 양상으로 흘러갑니다. 시각을 잃은자(앞으로 피해자로 통칭)들은 그 사실을 모른채 보호를 해준다기에 무기력하게 왔으나, 도착해서 알게된 사실은 결코 희망적이지 못한 격리라는 결과였다는 것이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정부를 믿지 못하는 시대적 배경이 소설에도 영향을 준 경우인데요, 정부를 절대신뢰 할 수 있는 시대가 있었는가 생각해보면 쉽게 떠오르지는 않네요.) 그렇게 최초 피해자와, 그 피해자를 집까지 데려다준 사마리아인, 그를 데리고 와준 사람들과 주변에 있었던 최초 피해자들이 한곳에 격리되게 되고, 그 곳에 한사람이 더 있었습니다.


의사의 아내, 피해자가 아니고 남들이 다 앞을 보지 못할때, 눈이 되어줄 한 사람이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할줄 모를거라 생각했던 정부에 남편을 맡기기 싫기에, 용감하게도 시각을 잃은척 연기하며 그들과 함께 격리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보시다시피 상당히 몰입감이 있는 도입부로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눈먼 자들의 도시'는 설정과 컨셉이 참신해서 다른 미디어에서도 탐낼만한 내용이죠. 영화로도 나왔었죠.(Blindness, 2008) 책을 좋아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영화로만 보셔도 무방할거 같습니다. 하지만 책에서 작가가 직접 서술해나가는 표현력은 영화 몇시간의 런타임으로는 형용할 수 없는 맛이 있습니다. 그래서 책으로 보는 걸 좋아하기도 하구요. 아니면 뭐가 그리 대단하길래 노벨상까지 받은걸까 궁금해 하며 책을 펼치는 것도 좋을 거 같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전개의 핵심이 될 의사 아내의 이야기를 보시면서 다음편에 이야기를 더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의사는 거의 여섯 시가 되었을 때 마지막으로 울린 전화벨을 듣고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의사는 말하고 나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으며 고개만 약간씩 끄덕이다가 전화를 끊었다. 누구예요, 아내가 물었다. 보건부야, 삼십 분 내로 나를 데리러 구급차가 올 거래. 당신이 예상하던 일인가요, 그래, 대충. 어디로 데려가는 거죠. 모르겠어, 아마 병원이겠지. 가방을 싸야겠네요, 옷도 몇 벌 챙기고, 그리고 다른 물건들도 준비해야죠. 난 여행 가는 게 아냐. 여행인지 아닌지 모르잖아요. 아내는 남편을 살며시 침실로 이끌고가, 침대에 앉혔다. 여기 가만히 앉아 있어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의사는 아내가 왔다갔다하는 소리, 서랍과 장을 여닫는 소리, 옷을 꺼내 가방에 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의사는 아내가 의사의 옷만이 아니라, 블라우스와 치마 여러 벌, 바지 한 벌, 드레스 한 벌, 여자만 신을 수 있는 구두 몇 켤레를 싸는 것은 보지 못했다. 그저 막연하게, 옷이 저렇게 많이 필요하지는 않을 텐데, 하는 생각만 했을 뿐이다. 그러나 직므은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쓸 때가 아니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물쇠가 딸깍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아내가 말했다, 다 됬어요, 이제 구급차를 기다리기만 하면 돼요. 아내는 가방을 문간에 갖다놓았다. 남편이, 내가 도와줄게, 나도 그정도는 할 수 있어, 내가 무슨 병자도 아니잖아, 하고 말했으나 그녀는 사양했다. 두 사람은 응접실 소파에 가서 앉아 기다렸다. 손을 잡고 있었다. 의사가 말했다, 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어야 할지 모르겠군. 그러자 아내가 말했다, 그런 걱정은 하지 말아요.


거의 한시간을 기다렸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아내는 일어서서 문을 열러 갔다. 그러나 층계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인터폰을 받아보았다. 알았어요, 금방 내려갈게요,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남편을 향해 말을 이었다,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대요, 아파트로는 올라가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대요. 보건부가 정말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아요. 갑시다. 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아내는 남편이 마지막 몇 계단을 내려가, 구급차에 타는 것을 돕고 나서, 가방을 가지러 돌아 갔다. 그녀는 가방을 혼자 들어올려 안으로 밀어넣었다. 이어 그녀는 구급차에 올라타 남편 옆에 앉았다. 구급차 운전사가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저 사람만 데려가야 하오, 그게 내가 받은 명령이오, 어서 내려주셔야겠소. 여자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나도 데려가야 할 거예요,


방금 나도 눈이 멀었거든요.


책 눈먼 자들의 도시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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