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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자기계발서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책 리뷰: 희노애락이 가득 담긴 우리의 인생 이야기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박경철)

자주 방문하는 알라딘에 갔다가 눈독들이던 책이 있어서 냉큼 사왔네요.

한국에서 의사로 하얀 가운을 입고 환자를 진료하는 것,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직업 의사.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 뒤에 감춰진 그들의 노고가 여실없이 그대로 내보이는 책입니다.


책 자체는 단편으로 환자마다 그의 생각을 정리한 블로그 형식의 단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매 단락마다 그의 생각이 적힌 주옥같은 글귀가 읽는 사람으로 하여끔 마음 깊은곳부터 무언가 울림이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같은 병에 감염될지도 모르면서 지금은 자신이 멀쩡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박해하고, 

내가 오늘 두 다리로 멀쩡히 걷는다고 해서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얕잡아보는 것이 우리들이 아니던가. 

인생은 내일 아침에 숨을 쉰다는 보장이 없는 것임에도, 

우리는 너나없이 진시황의 불로초라도 손에 넣은 듯 자만과 아집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가.


나병환자를 대하면서 의사이면서도 스스로 색안경이 있음을 인정하고 비겁하다 인정하는 모습에서 

의사도 인간이라는것을 여실없이 표현합니다. 


길을 가다 걸인에게 동전을 던지고, 방송에서 소개되는 사연을 들으며 ARS로 1~2천원을 보내면서 뿌듯해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깊은 곳에 이렇게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 대한 배려심과 휴머니티가 숨어 있음에 만족한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스스로에게 값싼 면죄부를 주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내가 이야기하는 나눔은 내 안에서의 나눔일 뿐, 나를 내놓는 나눔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는 내 기준에 부합하는 정의이지, 나를 낮추는 정의는 아닌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감아(나병환자의 정상인 자녀)들의 이런 생활을 알게 되면 

"아무리 그래도 천륜이 있지, 어떻게 부모를 버리고 모른 척하고 살 수가 있나." 

하며 그들에게 또 손가락질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부모를 버리게 만든 사람들이 바로 누구이던가요? 

바로 우리가, 우리의 편견이, 우리의 질시가 그들이 부모를 버리게 하고 그들 부모와 자식을 갈라놓은 것이 아닌가요.


가난 때문에 목숨을 끊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불편해진다. 

누추한 세상을 버리는 그 마지막 마음을 엿보다 들킨 사람처럼 나는 어느덧 죄인이 되어 있는 것이다.


환자를 진료하면서 인턴을 지낼때의 그 충격과 어려움을 반복하다보니 점점 무뎌져가는 존엄성에 대해,

여러가지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위에 아무것도 없거늘, 돈 앞에서 생명과의 줄다리기를 하는 상황들을 보면서

의사가 결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의 경계선에 있구나를 많이 느꼈습니다.

살릴지 말지 이대로 서서히 죽게 둘지 목숨을 담보로 수술을 할지 같은 결정은

감히 누구도 내릴 수 없는 선택인것을 의사라는 이유로 강요당하고, 선택하고 감당할 수 없는 죄책감에 힘들어하죠.

그럼에도 살리기 위해 날을 새가며 본인이 수술을 했음에도 환자의 보호자들로부터 욕까지 먹어야 하는걸 볼때,

승자 없는 싸움에서 이 과정을 아는 의사가 참아야 하는거겠죠.


농촌에서 농약을 마시고 서서히 죽어가는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왔으나 소생가능성은 없고, 

치료비며 진료비며 다 없는 가난함에 결국 치료를 포기하고 아들과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할머니. 

극심한 추위속에서도 택시비마저 다음날 식사비로 사용해야하는 가난함에 

집까지 걸어가는 둘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을 등지면서도 

누군가에게 화살조차 겨누지 않는 순박한 그들이 하나씩 이곳을 외면해갈때마다 

그렇게 죄인이 되어간다는 그의 말은 읽는 내내 괴롭고 슬펐습니다.


희망과 절망 이 두 단어의 차이는 상황의 차이일까? 아니면 인식의 차이일까?

다른 사람들이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만큼 많은 것을 가지고도 자살을 한 재벌그룹 회장과 

교통사고로 사지마비가 되어 휠체어 신세를 지고도 웃고 있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좋은 경제 조건, 부유한 집안, 안정적인 직장, 건강한 몸.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고 앞으로도 영원히 자신이 가지고 있으면 하는 것들이

정말로 행복이고 희망일까요?

머리에서 느끼는 희망과 절망은 마음의 상태에서 나오는거 같습니다.

정말 재벌그룹 회장과 휠체어 환자의 차이를 보면 물질로 희망과 절망이 정해지는건 아닌거 같거든요.

의사로써 24시간 불철주야 사람들의 목숨을 지키려 노력하는 저자의 머리속에는

항상 이러한 철학관을 생각할 수 밖에 없을것 같습니다.

정답없는, 찾을 수 없는 그 여정속에 하루하루 성숙해지는 모습을 존경합니다.


한쪽 다리가 절단된 아름다운 숙녀의 미니스커트. 

나는 그것으로 그녀가 드디어 가혹한 운명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음을 알았다. 

그녀는 가혹하고 잔인한 운명과 정면으로 맞서 당당하게 이긴 것이었다. 

이 세상에 어떤 아름다움이 있어 그녀의 한쪽 다리만큼 아름다운 감동을 줄 것이며, 

어떤 강인한 자가 있어 그녀의 승리보다 더 단단한 승리를 자랑할 수 있을 것인가. 

인주 씨의 미니스커트. 

그것은 작은 시련 앞에서도 쉽게 나약해지고 무력하게 무너지고 마는 우리들에게 웅변보다 더 큰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휠체어에 의지하는 환자처럼, 인주씨도 자신의 역경을 당당하게 극복해내고

세상에 희망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결혼을 앞두고 있었던 젊은 처자가 다리를 잃고, 유망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이 설계해뒀을 아름다운 미래가 사라진 그 순간,

뇌가 아직도 자신의 발이 붙어있다고 착각하면서 악몽으로 괴로워 할때,

환자의 심리적인 부분은 의사도, 인간은 그 누구도 해결해줄 수 없으니까요.

오로지 본인 스스로의 강함으로 승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녀는 당당히 승리했고, 저자에게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아름다움이라는것은 분명 이런게 아닌가 싶네요.


12월 24일, 다리를 절단한 8살 아이는 면역기능이 바닥에 달해있었고 

패혈증으로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고열이 더 이상 컨트롤 되지 않아 상태는 점점 더 나빠졌고, 

그날 저녁 여덟시쯤 정문이의 심전도에서는 더 이상 전기신호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동안 어린 몸을 포박하고 있던 줄과 생명유지장치 모니터를 떼어내고, 

절개되었던 몸을 봉합하고 흔적들을 지운다음, 

영안실에 건네던 순간 가만히 지켜보던 정문이의 부모님이 환자복을 벗기고 집에서 준비해온 옷으로 갈아입혔다. 

정문이에게 양말을 신기면서 인내심을 잃고 그 자리에서 몸부림치며 가슴을 쥐어뜯는 어머니. 

정문이 아빠는 아내를 달랜후 정문이 침대 옆으로 다가가 아이를 두 팔로 안아 들고는 아이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아직도 내 가슴에 그대로 새겨져 있는 잊혀지지 않는 마지막 인사를 아이에게 전했다.

"사랑한다..."

그 말은 우주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눈물겨운 말이었다.


그저 살아 있기만을 바랐는데

사람이 겪는 고통 중에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고통만한 것이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연말에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기쁨의 겨울을 보낼때,

조금 전까지 살아 숨쉬던 자신의 소중한 아이가 차가운 영안실로 들어가는데,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부모가 있었습니다.

분명히 성공적인 수술이었는데, 이제 다 나았는데.

인간이 어찌 할 수 없는 시련 앞에서 그들의 가슴은 무너져내립니다.

담당의사로써 그 옆에 서서 지켜보던 그는 

논리로 이해하는것이 불가능한 사랑의 위대함을 직접 보게 됩니다.

상상만해도 울컥하는 사연들 속에 보는 저도 이런데, 

직접 그 환자를 집도하고 옆에서 보고 글을 쓴 당사자는 얼마나 심할까 생각하게 되더군요.


청송 교도소에서 오는 분들은 대개 우리가 상상을 하기 어려울 정도의 중범죄를 저지른 분들이다. 

아무리 편견을 버리고 대하려 해도, 마음이 편치 않은 위협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형기가 오래되어 나이 오륙십이 넘어가면 강한 피의 기운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인생의 패배자로 확정되어, 버림받은 인간으로 낙인이 찍힌사람이 가지게 되는 무기력과 좌절만이 남는다. 

그렇게 무너져 내리면 세상에서 보는 여느 약자와 다름없이 인간 본연의 성정을 되찾게 된다.

새삼 수형자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 

태어나면서부터 악한자는 없을터인데, 과연 인간을 처벌할 수 있는 힘은 누가 가지고 있으며 그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수형자들을 진료할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많은 숙제를 안고 있는 듯한 마음이 된다.


역시 해답없는 질문과 고민을 하며 자신의 업보라 생각하고 환자를 보십니다.

인간의 연약함으로 때로는 환자로부터 심리적 위협도 느끼고, 병이 옮을까 걱정도 하는 평범한 인간인데도,

끊임없이 싸우고 생각하며 존엄성을 유지하는 저자의 모습도 역시 아름다웠습니다.

한 평생을 좁은 감옥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슨 낙으로 살아야 할까요?

어떤 죄를 지어야 그렇게 일생을 잃어야 하는걸까요?

정해져있는 법대로 진행하지만 그걸 확실히 이렇다 하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원치않는 결말로 이끄는 죄. 짓지 않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면 본인의 고통이야 말할 것도 없고

가족들까지 참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래서 병원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삶에 있어서

건강이 최고의 재산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건강이 최고죠.

반드시 건강해야 합니다.

운명으로 어쩔 수 없는 시련이 오지 않는 이상,

제 손으로 지킬 수 있는 것들은 적어도 잃지 않으려 노력해야 겠습니다.

삶에 대해, 어려운 인생에 대해, 이럴땐 어떻게 해야하지 하는 어려운 고민들을

감사하게도 정말 생생하게 적어주셨습니다.

저절로 겸손해지게 되네요.

눈물나지만 웃을 수 있는 행복한 그의 이야기,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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