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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소설

소설 크레스: 라푼젤의 인공위성 탈출 로맨스

신데렐라 빨간망토를 이어 이번에는 영화 탱글드의 원작인 동화 '라푼젤'의 모티브를 기반으로 한 책 '크레스'입니다. 

마녀의 위협으로 성안에 하루종일 갖혀 바깥 세상을 바라보며 지내던 라푼젤의 긴 머리를 타고 왕자가 마녀를 물리치는 이야기를 루나 크로니클 식으로 각색해서 풀어나온 주인공 크레스는 머리가 길고 갇혀있는 설정이 같습니다.


각 주인공들의 설정을 보면 저마다 신세계 개성이 있는데, 크레스는 컴돌이로 나옵니다. 방안에서 아무것도 안하는게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래머로써 인질로 잡혀 노동착취를 당하는 느낌으로 인공위성에 갇혀있습니다. 1권 '신더'에서 느닷없이 설계자로 등장해 신더를 도와 카이토 황자에게 까지 인도했던 인물 크레스는 이제 3편의 주인공이 되어 신더 일행과의 조우를 기다리는 이야기로 나옵니다. 드디어 이제 앞뒤가 맞아들어가는 느낌이 드네요.


루나 크로니클에는 삽화 하나 없이 소설만으로만 진행되어 캐릭터의 모습이나 행동등 일본 소설에서 흔히 볼수 있는 이벤트 씬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습니다만, 영화를 그리듯 써내려간 소설이라서 머리속에서 하나의 영상이 재생되듯 술술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이번편 크레스는 루나크로니클의 3편으로써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는 곡의 마지막 조인트같은 느낌으로 분위기가 한층 올라갑니다. 이전 1~2편 신더와 스칼렛에 비해 로맨스가 엄청나게 강력합니다. 두 주인공 신더와 스칼렛이 각기 다른 목적이 있어서 바빴던 것에 비해 인공위성에 갖혀있는 크레스는 자신을 구출해줄 왕자님을 물리적으로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가장 동화의 기존 여성스러움을 많이 담고 있는 수줍고 나약한 컨셉을 잘 유지한 캐릭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작가 자체가 좋은 의미로 페미니스트라서 남녀평등에 은은하게 풍기는 마음가짐등을 보았을때 큰 공헌을 하고 있으므로 남녀불문하고 읽는데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을겁니다.)


비련, 비극, 사랑. 결론은 언제나 사랑이었다. 자유보다도, 숙명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제2시대 노래에 흔히 나오는 '진정한 사랑'. 영혼을 충만히 채우고, 극적인 몸짓을 자아내고, 희생을 요구하고, 저항할 수 없고, 모든 것을 아우르는 사랑. - 크레스


크레스는, 인공위성에 7년동안 갖혀서 모든 문화를 컴퓨터로 배웠고, 현재 시대가 아닌 과거 지구의 문물을 그리워 하는 껍데기 루나인으로 나옵니다. 그녀는 소설 시점으로 과거 시절(우리에게 현재)에 오페라와 드라마같은 미디어를 보면서 진정한 사랑에 대해 감명깊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의 유일한 주인공이었죠.


왕자를 구해야하고, 자신의 신분이 밝혀지며 앞으로 많은 일을 헤쳐나가야 하는 린 신더와,

할머니를 구하기 위해, 울프를 만나 당당함을 유지하며 위기를 극복하는 스칼렛 브누아.

1편과 2편은 대서사시의 느낌이 강한 소설이라면,

독자들을 두근두근하게 할 3권 크레스는 분명 로맨스입니다.


"네가 죽을 땐 내가 판단할 거야. 그리고 그때는 여한 없을 만큼 멋진 키스를 해줄게. 하지만 지금은 일어나야 해." 크레스는 카스웰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카스웰의 눈동자는 놀라울 만큼 맑았다. 마치 정말로 크레스를 마주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의심에 찬 침묵이 한참 이어지는데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태평한 미소를 짓지도 않았고, 농담을 덧붙이지도 않았다.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크레스의 시선이 주체할 수 없이 카스웰의 입으로 미끄러졌다. 그때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결의였다.

"약속해요?"


그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강력한 힘과 맞서 싸우면서도 그들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나아가는 과정을 그리는 사하라 사막편은 잠시 루나크로니클의 대서사시를 내려놓고 그들의 케미를 감상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닿을듯 말듯한 애절함이 담겨서, 좌절도 하고 포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너무 아련해서 눈가가 촉촉해지는 소설이었습니다. 각 편에 한 쌍씩 총 8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사랑의 난봉꾼 수배범 카스웰과 세상에 때 뭍지 않은 순수 소녀 크레스의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잘 담아내다니 감탄하면서 읽게 되었습니다. 로맨스 소설 좋아하는 독자분이라면 4편중에 3편이 제일 감성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거에요.


가끔은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연기를 하는 것만 같소. 루나인들이 가장 심하지요. 레바나와 그 수행원들은... 그들은 그야말로 모든 것이 가짜요. 생각해보시오. 레바나는 내 약혼녀인데, 나는 아직 레바나가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오. 하지만 비단 루나인만이 아니오. 지구연합의 정상들도, 심지어 우리 내각의 각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실제보다 더 똑똑하거나 자신 있어 보이려고 자신을 위장하고 있소.


소설 속 루나인은 상대방의 뇌파를 조종해 원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감출 수 있는 가면같은 능력이 있습니다. 달 왕국의 여왕 레바나는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살아가는 루나인으로 나오지요. 와 어떻게 저래 하면서 읽다가 보면서 깨닫게 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소설 속 실제로 얼굴까지 바꿔버릴 정도의 능력은 루나인에게만 있지만,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는 점은 우리의 모습이라고도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 속 숨어있는 메세지에는 분명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자신을 포장하고 싫은데 웃으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에 카이토 황제가 지친것 처럼, 지쳐있던게 아닐까요? 그런 가식적인 세계에서만 살아오다가 등장한 한 사람, 싫으면 싫다고 말하고 좋으면 활짝 웃어주는, 행동 그대로가 마음에서 나오는 사람 린 신더를 좋아하게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똑똑히 알려드리죠. 나는 한 번도 당신을 조종한 적 없어요. 앞으로도 그럴 일 없길 바라요. 그리고 책임져야 할 나라가 있고 지켜야 할 백성이 있는 사람은 당신 혼자만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폐하, 송구합니다만, 저랑 같이 가시죠. 나를 믿을지 말지는 나중에 시간이 넉넉할 때 고민해보시고.  -신더-

신더 특유의 털털하게 웃으며 비꼬는 말투는 참 매력적입니다. 4편에서 너무 자주 남발해서 조금 그런 순간도 있었는데, 신분을 모르던 시절에도 왕가의 사람에게 보여주는 진솔함, 그리고 이제 자신의 위치를 알고 무거운 책임감을 등에 엎고 가는 지금도 신더는 여전히 카이토가 알던 그 신더가 맞다고 알려주는 재회장면. 멀리 돌고 돌아 드디어 만났네요. (1편에서 감옥에 가는 순간 이후로 둘은 처음 재회합니다.)


"아... 그건 그렇고, 오랜만이에요."

자신을 지켜줄 가족이 아무도 없이 홀로 나라를 통치해야할 카이토 황제에게 토린 고문관은 어린시절부터 자신을 충직하게 지켜주던, 이제는 아버지의 역할까지 해주는 고마운 인물로 나옵니다. 카이토가 신더를 따라 인질이 될때도, 풀려날때도 누구보다 걱정하고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황제를 맞이해줄 정도로 카이토를 진심으로 아끼는 인물이죠. 정말 보내기 싫었고, 신더를 신뢰하는 카이토에게 항상 조심하라고 걱정해주며 마지막에 신더에게 카이토를 보낼때도 오로지 황제 걱정뿐인 사람 콘 토린. 그도 서서히 신더를 향한 경계를 풀고 그녀를 믿기 시작합니다. 이 모든 비극을 끝내줄 한 줄기 희망처럼 말이지요.


"셀린 공주를 찾은 겁니까? 전부 그것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어요?"

꿈 속에 희망처럼 희미하게 비치던 빛이 안개가 걷히고 환하게 비추는 역전 드라마의 시작을 알립니다. 모든 퍼즐조각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이길 방법이라고는 존재하지도 않는 레바나의 독재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신더?" "... 네, 맞아요. 찾았어요." 카이토가 화물칸을 가르키며 금발여자 분이냐고 물어보고, 프랑스 여자분이냐고 물어보았다. 신더는 펜치를 힘껏 움켜쥐었다. "그러면 어디 있죠? 이 우주선에 계시긴 한가요? 제가 만날 수 있습니까? 아니면 지구에 숨어 있는 겁니까?" 신더가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침묵하자, 카이토는 얼굴을 찌푸렸다. "왜 그래요? 공주님에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인간도 아니고 사이보그 게다가 루나인. 신분 차이 마저 나던 신더는 카이토에게 좋아하는 감정마저 숨긴채 자신이 사이보그인게 알려지기 싫었습니다. 나도 인간인데, 인간 처럼 대우를 받고 싶었던 그녀는 끝까지 카이토에게 그 사실을 숨기고 싶었겠죠. 인간이 사이보그를 볼때의 경멸감이 담긴 눈빛을 잘 알기에, 카이토의 눈에서 자신을 보는 표정이 그렇다면 마음이 찢어질테니까 말할 수 없었던 진실들이 맞추어지면서 신더는 카이토 앞에서 이제 진실을 고할때가 왔습니다.

"카이토, 저에요. 제가 셀린 공주에요."

카이토의 희미한 웃음과 모든 퍼즐이 이제야 맞아들어간다는 이 한줄의 대사로 루나 크로니클의 4막의 시작을 알립니다. 흩어져있던 이야기가 하나로 모여 저마다의 화음을 이루며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소설 크레스, 로맨스로 가득하지만 여전히 대서사시의 한 부분이기도 한 책을 추천합니다. 왕자의 결혼식에 쳐들어가 "이 결혼은 무효요" 하고 외치며 왕자를 납치하는 신데렐라 이야기. 라푼젤의 부모님이 마녀에게 아이를 빼앗긴 것, 마녀가 키우던 채소를 도둑맞고, 탑에 들여보내는 과정까지 루나크로니클에 맞춰 동화(童話)를 동화(同化)시키는 저자의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은 감탄의 연속이었습니다. 매권 시리즈의 다음 권 책을 펼때마다 보이는 압도적인 페이지 수를 보면서 흐뭇할 수 있을 정도의 감탄이 가득한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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